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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8. 26
1989. 3. 30
1989. 3. 19 세계일보
1988. 9 미술교육
1988. 5. 1 주간여성
1988. 5 프티라이프
1988. 5 여성백과
1988. 3. 24 한국경제신문
1988. 3. 23 日刊스포츠
1988. 3. 22 중앙일보
1988. 3. 22 조선일보
1988. 3. 22 동아일보
1988. 3. 16 스포츠서울
1988 李淑子 네 번째 繪畵전시회
1987. 4 미술세계
1986. 8. 27 스포츠 서울
1986 여성동아
1982. 12. 17 동아일보
1982. 12. 12 주간여성
1982. 12. 1 중앙일보
1982. 12 일간스포츠
1982. 12 주부생활
1982 주간여성잡지
1980년대
1980. 9. 29 신아일보
1980. 9. 24 서울신문
1980. 9. 23 한국일보
1980. 8 여성 中央 저널/ 여성계
1980. 6. 14 중앙일보
1980. 6. 14 중앙일보
1980. 5. 11 주간中央
1980. 12 중앙일보
1980. 11 토프론
1980. 9. 22 東亞일보
1980. 9. 22 중앙일보
1980 주간 女性
1980 일요신문

1989. 8. 26

수만 번의 붓질…보리의 출렁임에 沒入 대담한 色彩의 女體로 단조로움 벗고



來鄕 李淑子씨(47)에게 1980년은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 된다. 이를테면 남들이 일생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세속적 영광을 연거푸 누렸고 자신을 송두리째 쏟아 부어 몰두 할 수 있는 그림소재「보리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3회 중앙미술대전 대상과 80년 國展 대상을 몇 달 새로 차지한 그는 세상의 꼭대기에 선 기분이었지만 이 땅이 돌아가는 모양이 어수선해 맘껏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 해는 정초부터 유난히 의욕이 솟아 정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외에는 그림만 그렸죠. 간간이 스케치 해뒀던 보리밭이 손에 쩍 달라붙어 나를 놓아주질 않는 거예요. 보리수염. 알갱이 하나하나를 그려가다 보면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던. 완벽한 몰입의 순간들 이었습니다.” 스스로도 욕심 많은 여자라고 자신을 평가하는 그는 1회 때 장려상을 받은 중앙미술대전에 재도전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5윌 들면서 접수마감일이 다가오자 그야말로 식음 전폐의 나날을 보냈다. 
“기절할 정도로 기진맥진해도 캔버스 앞을 안 떠나고 버티고 있는데 하루는 아이가 들어와 우리는 라면 비누 같은 거 안 사다 놓느냐고 묻는 거예요. 무슨 소린가 나가봤더니 아파트 이웃들이 온통 슈퍼마켓에 몰려 광주사건이 확대됐었을 때를 대비해 물건사재기를 하고 있더군요. 「난리가 나도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길로 다시 돌아앉아 보리밭 속에 묻혔습니다.” 이제는 옛말이 되어 버렸지만 불쑥 30여년 끈만 해포 한반도 전체를 죄어오던 3월 보리 고개를 넘긴 농촌. 그 행복과 풍요의 표상이라 할 누런 보리밭이 손에 잡힐 듯 넘실거린다. 그에게 중앙미술대전 大賞을 안겨준 「麥波」는 그의 정신과 체력과 시간을 모조리 빨아들여 완성됐고. 그 자신도 “이 보리밭 이야말로 내 그림에 정열을 수용 할 수 있는 소재다.』라고 확신케 됐다. 보리알과 수염 하나하나를 그려 갈 때 그는 육체적 고통의 한계 같은 걸 느끼기도 하지만 정신적 쾌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보리의 매력은 문자 그대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거죠. 수천 수 만번 붓질이 가지만 공력들인 만큼 정직하게 화면에 드러나고 내가 게으름 안 부리고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을 줍니다. 어느 때는 苦行하는 기분이지만 난 보리를 떠날 수 없어요.”

82년 미술회관 개인전 때는 1천호에 가까운 大作 들을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작년에는 전시장 사방 벽을 꽉 메운 「황금보리밭의 소들」을 선보여 「통큰작가」소리를 들었던 그지만 이제는 좀 장난하듯 즐겁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브」는 그가 좀 쉬고 싶을 때 자신을 위해 그리는 그림이다. 보리밭이나 소 그림이 늙기 전에 힘 있을 때 좀 더 하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라붙은 그림이라면 「이브」는 그 강박감과 피로를 풀어주는 휴식의 그림이다. 꼿꼿이 서서 긴장해 그려야 하는「보리밭」과 달리 「이브」는 질펀하게 질러 앉아 이 색깔 저 색깔 울긋불긋 칠해가며 아이마냥 기쁨에 겨워 그리는 그림이다.

  “‘그림은 색이다.’라고 말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화단엔 日帝잔재니 뭐니 하는 채색화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있는데 한국화의 뿌리를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는다면 오히려 중국 유교 문화에 근원을 둔 수묵화가 전통성에 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弘益 대학원에서 채색위주의 작가들 박생광 천경자씨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이브」에서 채색화가로서의 뚜렷한 자기주장을 펴 보인다.  대담하고. 관능적인 몸짓의 女體는 추상적으로 보이는 배경을 위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살림집에 끼어 복닥거리며 일하다 얼마 전 오피스텔 하나를 그만의 오붓한 작업장으로 마련한 이숙자씨는 『재능이란 도토리 키 재기일 뿐 노력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